우리 가족은 누군가의 생일날에는 한자리에 모인다.
보통 아버지의 집에 모여 식사하고 근황을 나눈다.
다음 주 주말은 누나의 생일이다.
이번엔 동생이 바쁜 관계로 엄마가 일주일 일찍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오늘 다같이 모여서 중화요리를 먹었다.
우리 가족은 한 지역에서만 20년 이상을 살았다.
구체적인 지명은 굳이 밝히지 않겠다.
내 유년시절부터 군 입대를 하기 전까진 쭉 반지하 방을 전전했었다.
지금은 가족들이 다 따로 살고있다.
늘 모이는 아버지의 집은 임대아파트다.
위에 얘기한 20년 이상 살았던 곳이 재개발되어 지어진 신축 아파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 집에서 모이기로 약속을 했는대
내가 조금 늦어서 최대한 가는길에 지름길을 찾아서 가로질러 가려고 했다.
평소에 가던 길은 판자촌이 모두 철거되어 옛날 동네 모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근데 가로질러 가다보니 아직 철거되지 않은 옛 건물과 기억 속 골목들이 남아있었다.
이걸 보니까 옛날에 살았던 판자촌 자리를 밀어버리고
바로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었다는게 실감이 났다.
"옛날에 그 자리가 여기더라? 몰랐는대 바로 철거한 그 자리에 지은거였구나" 하고 얘기하니 누나는 공감했고 동생은 무슨 소린지 모르더라.
누나는 내 얘기를 듣고는 신나서 옛날얘기를 꺼냈다.
나와 형제들의 나이차이는 2살 터울의 누나, 9살 터울의 남동생이다.
유년시절의 구체적인 기억은 몇 살부터 떠오르는 걸까?
아마 1~2살은 기억 못하고, 4~5살은 기억난다는 등
사람마다 여러 개인차가 있을것이다.
나의 첫 기억은 5~6살, 즉 유치원생~초등학생 무렵부터 기억이 난다.
우리집은 가난하다, 유년시절엔 벌레가 들끓는 단칸방과 반지하에서 살았었다.
두 사람이 지나가기엔 좁고,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은 골목길에 살았다.
천장이 낮고 얼기설기 지어진 집들이 넓직한 주택지에 밀려서 한 귀퉁이에 모여 생겨난 판자촌 골목.
그 중에서도 단칸방이었다.
아빠,엄마,누나,나 이렇게 네 식구가 그곳에 살았다.
말 그대로 손바닥 만 한 곳이었다.
TV, 계절별 옷들, 침구류, 이것들이 다 거기에 어떻게 들어가있던 건지 다시 생각해보니 무척 신기하다.
사람이 누워 잘 공간은 거의 없어서 우리 네 사람은 나란히 천장을 보며 잤었다.
너무 비좁은 탓에 모두의 어깨는 맞닿아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벌레는 너무도 많았고
엄마가 끓여둔 김치찌개에는 바퀴벌레가 둥둥 떠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 때 그 집 있잖아~" 하며 위와 같이 누나에게 설명을 했다. 그러니 누나가 말하길
"너한테는 그 집이 처음 기억나는 집이지? 우리 공동화장실 바로 옆집도 살았었고, 그 골목에서만 4번정도 이사했을걸?"
알고보니 내가 설명한 단칸방은 누나에게는 2번째 집이었다고 하더라.
단칸방과 걸어서 몇 분 안 걸리는 위치에 낡은 연립주택이 있었다.
내 나이 14살때 이 연립의 반지하 셋방으로 이사를 갔는대 여긴 방이 2개여서 단칸방보다는 좋았다.
집 안에 화장실도 있었다. 세탁기도 있었다.
칸 영화제 수상을 한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 집과 비슷했다.
무단침입,좀도둑질,반려동물의 죽음, 등등..
이 반지하에 살던 동안 겪었던 사건사고가 많았다.
우리 집 옆은 반지하호실에 세들어 사는 가족도 아들,딸이었다.
이 집은 창문만 열리면 우리집에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는대
어느날 누나가 귀가를 하고 문을 열었는대 집 안에서 인기척이 났더라는 거다.
혹시 마주치면 흉기에 당할까 겁먹어서 바로 들어가지않고 잠시 머뭇하는 사이였다.
창문을 열고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단다.
정신을 추스르고 들어가보니 컴퓨터가 켜져있고
열어본페이지 목록에는 여성의류쇼핑몰 접속기록이 있었다. 또 어떤 mp3가 usb 충전기에 꽂혀있었다.
우리 누나는 얼마 전 결혼을 했다.
누나는 매형에게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때 옆집이 정말 이상한 집안이었어~으으" 했다.
사건의 후일담인대
옆집 딸이 우리집 문을 두들기고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는대 mp3를 도둑맞았어요~ 그쪽은 괜찮나요? 훔쳐간거 없어요?"
하고는 누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 말을 듣고 누나는 우리집에 있다며 mp3를 돌려줬었다.. 이걸 멍청하게 당한 누나가 더 짜증이 났었다.
아무튼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
근데 가난했던건 맞지만 그런 집보다 더 좋은 집에 세들어 살지 못하는 정도로 수입이 낮지는 않았다.
이걸 엄마에게 물어봤는대 이사는 갈수 있었다고 한다.
근데 금방 될줄 알았던 재개발을 기다리다보니 20년이 걸려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비슷하게 집안이 가난하거나 마음이 가난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장한게 무척 아쉽다.
재개발이 결정된 이후엔 동네는 모두 철거됐다.
이렇게 쫓겨난 거주민들은 이사지원금을 소액씩 챙겨받고 주변동네의 임대아파트나 사글세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부터는 아파트였기 때문에 반지하와는 비교도 안되는 생활이었다. 물론 그래봤자 임대아파트였고 방은 여전히 2개였다.
여기에 살던 동안 나는 군입대를 했고 제대할때 쯤 어머니와 아버지 두분은 이혼을 결정했다.
이런 집에서 부대끼며 인생을 살아온 나의 열등감은 뭘까?
어쩌면 이런 자질구레하고 초라한 인생사 얘기를 일일히 다 읽는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글엔 중간중간 읽는 사람을 위한 동기부여를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은 동기를 떠나서
이 글을 읽은 당신은 내 열등감이 뭔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것이다.
나는 방 3개 넘는 집, 깨끗한 집, 벌레 없는 집, 등 주거공간에 열등감을 갖고있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이 꿈이고 주변에서 집을 샀다는 얘길 들으면 너무너무너무 부럽다.
예전의 단칸방같은 집에선 절대 살고싶지 않다.
올해 29살이다. 나는 흙수저고 천재같은 재능도 없다.
지금은 다세대주택에서 월세로 자취를 한다.
하지만 1년 5개월 만에 근로소득 연 1억원을 달성했다.
또한 곧 예금 잔고는 1억에 도달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작은 목표겠지만 30살 전까지 꼭 1억을 모으고 싶었다.
이 목표달성은 벌써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다.
담배를 끊은지도 열흘이 지났다.
나는 매일 이 블로그에 무슨글이라도 투고해서 나의 글쓰기 스킬을 늘릴것이다.
인격적 함양, 사업 아이템 구상, 메타 인지, 등등 나 자신을 통제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기필코 성공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3년 안에 집 등기 매매계약서를 작성해서 올리겠다.
당신이 누구던, 어떤 이유로 끝까지 읽게 되었던
내 블로그를 관심있게 봐달라.
아무것도 가진게 없던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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